전략가 조혜련 - 그녀는 전략을 아는 사람이다.


조혜련, ‘3한4일’생활 2년 만에 NHK 진행자 꿰차

기사입력 2008-11-04 00:47 |최종수정2008-11-04 07:43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이도은.권혁재] “일본엔 개그맨만 2000명이 넘어요. 공원에서 연습하는 팀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좋아하기는커녕 시끄럽다고 원성을 사죠. 그런 경쟁 속에서 한 프로에 고정 출연한다는 것만도 뿌듯해요.”

개그맨 조혜련(38·사진)이 또 한번 일을 냈다. 맨몸으로 일본에 진출한 지 2년6개월 만이다. 그간 TBS 시사 버라이어티쇼 '선데이 재팬'과 간사이TV의 토크쇼 '오조마마피'로 영역을 넓히더니, 이번엔 NHK 프로그램인 '니혼쓰(일본통) 리스트'의 공동진행자 자리를 확보했다.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으며, 내년 초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다. 이미 8월에 녹화를 마치고도 '방송 나간 뒤에나 보자'며 조심스러워했던 그를 만났다. 

“새로 맡은 프로그램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일본 관광지를 소개하는 겁니다. '조사원'이 돼서 남들이 지나치기 쉬운 관광 아이템을 짚어주죠. 가령 주제가 아사쿠사 신사라면 딱 그곳만을 하는 게 아니고 주변까지 조사해 관광 코스로 만드는 거죠. 이 프로그램에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을 봤어요. 일본 연예인들도 여럿 면접을 봤다더라고요.”

만나자마자 새 프로그램 '홍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몇 개 프로에 출연했느냐보다 어떤 프로에 나왔느냐는 걸 생각할 시점이죠. 얼마 전 '헤이x3' '런던 하쓰' 등 일본 간판 오락프로에 나갔던 건 그래서 의미가 깊죠. 최근 요미우리TV의 '오와라이 게닌노 나케루 하나시(개그맨들의 눈물의 이야기)'에 출연한 뒤로 '일본 활동이 업그레이드됐구나' 하고 느껴요. 일본 최고 코미디언 31명이 나와 3분씩 가장 감동적인 사연을 말하는데, 거기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나와 1등을 했어요. ”

일본 얘기가 더 나오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궁금했다. 왜 국내에서도 인기가 한창일 때 새로운 도전을 생각했는지 말이다.

“5년 전 일본에 간 게 계기였죠. 예전과 달리 일본인들이 “한국말이다” 하며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꿈을 키웠어요. 영화·드라마에 비해 교류가 덜한 오락 버라이어티에서 가능성을 엿봤어요. 하루 8시간씩 일본어에만 매달렸죠. ”

일본으로 건너간 뒤 그가 겪었던 고생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 신인처럼 PD들에게 명함을 뿌리고 '골룸' 같은 '독한' 개인기를 선보였지만 외면당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런데 이제는 연말에 최고 연예인만 출연한다는 '홍백가합전'에 섭외될 만큼 내공을 쌓았다.

“일본의 대표 개그맨 아카시아 산마가 진행하는 '오도루 산마고텐(춤추는 산마저택)'에 처음 출연했죠. 그런데 한국처럼 리액션을 크게 하고, 모르는 질문엔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더니 막 웃더라고요. 그때 '아, 내숭 없고 털털한 조혜련 캐릭터를 일본에서도 살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일본 TV에 나오는 그를 보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대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 보니 아직도 방송 중에 한국말이 튀어나갈 때가 있어요. 말이 서툴어 바로 받아치지 못해서 안타까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8개월 전부터 일본인 11명과 함께 살고 있어요. ”

가족 얘기가 나와 내친김에 두 아이 이야기도 물었다.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떨어져 사는 엄마에 대해 불만은 없을까.

“처음엔 미안했지만 이젠 아이들에게 '엄마는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가르쳐요. 제 엄마도 바빠서 저를 잘 챙겨주지 못했지만 큰 뒤로는 원망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 아이들도 그럴 거라 믿어요. ”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도 포기한 채 일주일의 사흘을 한국에서, 나흘을 일본에서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그의 포부는 뭘까.

“일본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개그맨이 많아요. 사카이 마사야키, 구로야나기 데쓰코 등도 다 예순이 넘었죠. 하지만 녹화가 길어져도 모두 힘들다는 불평 없이 일해요. 한국처럼 “내가 선배니까 나 먼저 찍어줘” 하는 일이 없더군요. 그런 일본 연예계를 보며 60,70이 돼도 개그맨을 천직으로 알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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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은 한국에서 자신이 성공했던 성공방정식을 버리고 일본을 택했다.
자신이 성공해온 성공방정식이 미래에는 실패의 공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닳았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의 상품/ 서비스는 성공해 갈 수록 인정 받을 수록 Commodity화 되어간다.
그걸 벗어나지 못해서 몰락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그녀의 신선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by Ted_Tatiko | 2008/11/04 09:16 | 전략적 이동 | 트랙백

한국의 Nintendo Wii 의 실패.

기업의 '혁신'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닌텐도의 최신 게임기 'Wii'다. 본 글에서는 닌텐도의 혁신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려 하기 보다는 닌텐도가 한국에서 실패 한 원인을 한 번 살펴 보려고 한다.

닌텐도 Wii의 전략.

닌텐도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게임의 유저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큰 전략이다.
기존의 콘솔 게임산업은 하드 코어 유저들을 더욱 만족 시키기 위해서 게임의 난이도를 점점
어렵게 하고, 또한 컴퓨터 그래픽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하지만 사토루 이와타가 말하는
닌텐도의 전략은 게임을 하지 않는 여자와 노인, 가족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게임을 할 때 같은 출발선상에서 하겠금 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이 어려워
질 수록 게임을 처음하는 사람은 게임을 배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리모트 컨트롤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간파하고, 그러한 학습을 원치 않는 사람까지 한 번
부딫혀 보겠금 만든것이 닌텐도 위 게임의 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닌텐도
DS나 닌텐도 WII의 게임 타이틀을 보면, 게임을 어렵게 만들어서 재미를 증폭시키기 보다는
쉽게 만들어서 모두가 참여 할 수 있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전략의 수립 못지 않게 그 전략을 실행,'형상화', 곧 가시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닌텐도는
자사의 전략을 제대로 형상화 했다. 그 덕택에 닌텐도 Wii는 콘솔 게임 시장을 키웠고,
그 결과 Wii는 PS3, PS2 그리고 XBOX360을 압도적인 차이로 눌러 버리고, 시장의
제왕으로 다시 군림하게 된다. 물론 PS나 XBOX가 이를 다시 뒤짚어 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PS3가 가격을 인하하고, XBOX가 가격을 인하한다고 해서, 그러한
콘솔게임에 만족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구매를 할지 의문이다. PS나 XBOX가 기존에
해오던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 그들은 그들이 정해 놓고 교육 시켜 놓은
Segment시장에 열광하는 고객들에게만 어필할 뿐이기 때문이다.

점점 마케팅 비용은 올라가고, 가격은 하락하고 마진은 박해지고....
주가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단정은 할 수 없지만, 예상은 가능하다.

닌텐도 Wii의 한국광고의 구태스러움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Sensation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닌텐도Wii는
왜 한국시장에서 실패 했을까? 물론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출 순 없겠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은 콘솔 게임 시장이 그리 크지 않고,
대신에 온라인 게임이 훨씬 발달 했다는 이유를 많이 들고 있다.
또한 닌텐도 DS에 학을 떼는 부모들의 학습효과가 새로운 닌텐도 콘솔 구매를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 또한 이유다. 이러한 이유들도 타당성이 있겠지만, 나는 닌텐도 Wii의
진정한 '가치'를 과연 광고 및 홍보로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더 큰 실패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아래의 VIDEO를 한번 감상해 보자 미국에서 Wii의 출시와 동시에 나온
Wii Trailer 1이다. Wii Trailer에서는 꾸밈없이 Nintendo wii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 및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Wii는 이 광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Wii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기존 게임기 시장의 하드코어 유저들을 광고의 타겟으로 했다기 보다는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도 어필했다.) 여자, 노인, 가족등 닌텐도의 전략이
잘 반영된 광고다.



닌텐도의 한국 광고는 어떤가?
기억에 의존한 원빈, 노홍철의 광고는 밋밋하기 그지 없다.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원빈과 노홍철이 하는 신개념의 게임을 너희들(시청자)도
즐겨라?..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닌텐도 위의 '강점'인 쉽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빠진 맥주같은 그런
연출로 어느 누가 닌텐도 위 게임에 열광하겠는가?..

개인적으로 닌텐도 wII가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by Ted_Tatiko | 2008/09/23 18:50 | 트랙백 | 덧글(4)

백마디의 말보다 더 강한 메세지를 남긴 13장의 사진들.

백마디의 말보다 더 강한 메세지를 남긴 13장의 사진들.

 

1. Omaha Beach, Normandy, France

포토 저널리스트의 잘못 찍은 사진

급박한 전투 속에서 잘못된 노출과 흔들린 초점으로 잘못 찍은 이 사진은 50년 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오마하 해변 전투씬의 필름효과에 모티브가 되었다.

 


2. Migrant Mother

세계대공황의 얼굴

대공황 당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2,500명의 노동자 가족들 중 한 가족의 어머니를 찍은 이 사진으로

당시 미국의 정치가들을 자극하여 빠른 경기 부양정책을 펴게 하는데 기여했지만 사진의 여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3. Federal Dead on the Field of Battle of First Day, Gettysburg, Pennsylvania

전장 자체를 옮겨놓은 사진

미국인들에게 전장의 참혹함을 보여준 무거운 전장 사진
아직까지 미국인이 꼽는 참혹한 전쟁 사진 1위에 선정되고 있다.

 

 

4. Murder of a Vietcong by Saigon Police Chief

전쟁은 끝났지만 인권이 파괴되는 사진

퓰리처 상으로 더 유명해졌다.
많은 세계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에 강한 회의를 느끼게 한 사진


 

5. V-J Day,Times Square, 1945, a.k.a. The Kiss

가장 아름다운 키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방송 후 유럽의 전장에서 태평양의 전장으로 향하게 될

병사들이 타임 스퀘어에서의 축제중 키스하는 장면

 

 

6. Hindenburg

기술의 패배


탑승한 97명중 62명이 살아남았지만

당시의 최고급 운송수단의 추락으로 불붙기 쉬운 교통 수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린 사진

 

 

7. The Tetonss-Snake River

지구를 구한 사진


깨끗하고 선명한 이 풍경 사진은 1936년 미국 의회에 Canyon 보호를 위한

로비활동의 자료로 사용되어 국립공원 지정에 이바지 하였다.

 

 

8. The Corpse of Che Guevara

체 게바라의 살아있는 열정


체 게바라를 민중 혁명과 사회주의의 순교자로 만든 사진

 

 

9. Einstein with his Tongue Out

천재도 유머가 있다


천재에게도 유머가 있으며 비법하고 괴팍한 천재가 아닌 유머있는 한 사람을 표현하여

아인슈타인이 천재성과 함께 개성이 있음을 보여준 사진

 

 

10. Dali Atomicus

초현실적인 사실을 만들어낸 사진


"점프" 초상화는 적어도 7개의 생활 잡지표지에 실렸으며,

초상화 사진술의 새롭고 과격한 모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1. Loch Ness Monster, The Surgeon's Photo

거짓의 사진


수중수색과 현지의 관광사업으로 수백만 달러를 쓰게한 한장의 사진.
하지만 장난감 잠수함 및 목재용 퍼티를 이용하여 만든 괴물로 밝여진 사진

 

 

12. Gandhi at his Spinning Wheel

20세기 유력한 인물인 인도의 지도자 간디의 마지막 초상 사진
이 사진 촬영 후 2년 뒤 간디는 암살 당했다.

 

 

13. Le Violon d'ingres

모델 사진위에 바이올린의 F홀을 그려넣어 재촬영한 기법으로

클래식 누드의 기원을 변고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진.

 





출처 - 다음-

by Ted_Tatiko | 2007/01/08 12:31 | 사진과 삶 | 트랙백

스티브 잡스.



 이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를 들어봤는가? 어쩌면 이제 갓 20대가 넘는 세대들에게는 아이팟이 더욱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넘어서까지 애플이란 회사는 너무나 독특한 기업문화와 그 제품의 독특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뒤에서도 그의 성격을 이야기 하겠지만, 그는 너무나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주의자 였다. 그리고 때론 괴팍하기도, 그리고 독단적이고 너무나 솔직한 그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회사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다. '아이콘'을 읽으며 세계적인 기업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 대한 존경심 보다도, 기업가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의 창조자 였으며, 시대의 리더였다.


스티브 잡스는 천재적인 발명가?

 적어도 내가 스티브 잡스를 모를 때 이야기이다. 그는 탁월한 기업가였다. 애플은 그의 열정과 집념으로 만들어 졌지만 당대의 걸출한 전자공학도였던 워즈니악 없이는 만들 수 없을것이다. 늘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는 연구자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하지만 사업가로서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니 무시했다. 그는 늘 "그레엄 벨이 시장조사를 하고 전화기를 만들었단 말인가?"를 외치며 자신의 머리에 있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제품의 혁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애플의 제품은 개선이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이다. 비록 비용이 높아져서 그 값이 너무 높아서 시장에 쓸모 없는 제품을 많이 만들었을 지언정 애플은 항상 혁신적인 제품만을 만들어 낸다. 나는 이점이 바로 애플이 삼성이나 여타 다른 회사에 비해 갖는 우월성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이 연초에 창의와 혁신을 말하지만, 결국 삼성이 소니나 애플과 같은 정말 가치혁신적인 킬러 브랜드 내지는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은 개성이 획일화된 직원들의 모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스티브 잡스 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스티브 잡스 같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그는 사우스 웨스트사의 허브 캘러허 같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철저히 마이크로 매니저 였으며 괴팍스럽기 까지했다. 또한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찬밥대우까지했던 인물이다. 개인 사생활 또한 어떤가 20대 초반에 낳은 자신의 딸을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억만장자가 된 뒤에는 그 딸에 대한 양육비 조차 주기를 거부했던 그다. 물론 후일 그 딸을 인정하고, 그의 성격도 겸손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그가 긴 세월애플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그는 한마디로 '개차반'에 가까웠다. 너무 이른 성공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리더십이라면 글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놀라운 추진력 기업가로서의 감각등이 그를 부차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말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정의 할 수 있는 그의 리더십은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가장 뛰어난 인재가 그 밑에서 일할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 인것같다. 또한 그는 절대로 불가능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것이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와 픽사 그리고 애플로의 귀환.

  스티브 잡스는 운도 많이 따른 사내다. 하지만 '운'이란 것은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픽사를큰 비즈니스로 생각하지 않고 사들였지만, 픽사가 결국 스티브 잡스를 구해냈다. 그는 협상을 할 줄 알았고, 시장을 판단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또한 힘의 균형을 아는 사내였다. 결국 이사회에 의해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를 애플에 팔고 픽사를 성공시키며 화려하게 애플로 복귀했다. 결국 애플을 애플같이 만들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밖에 없다 것을 스티브 잡스 스스로 그리고 애플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나온 킬러 제품이 바로 아이 튠즈 그리고 아이팟이다. 그는 대중을 감동시키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연설문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그만큼 무대위에서는 대중을 감동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팟 비디오를 맥월드에서 시연회 할 때도 그는 청바지 차림의 수수한 모습으로 대중을 감동시켰다. 이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새로운 성공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는 시장을 잡고 있으니까.

이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2007년 1월9일 샌프란시스코의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는 I-Phone을 공개한다고 한다. 맥을 만들었던 것 처럼, 그리고 아이팟을 만들었던 것 처럼 과연 그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구상의 많은 애플 마니아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애플의 신제품을 기대하는 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 다운 애플다운 제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그를 클릭함으로서 그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그는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by Ted_Tatiko | 2007/01/07 23:32 | 세상을 향한 창 | 트랙백(1)

칼리 피오리나의 프리젠 테이션.

지금도 연설을 할 때면 매번 시작 전에는 초조하다. 그러다 일단 무대위에서면 한사람과 대화를 해 나간다는 생각에만 집중한다.

 

by Ted_Tatiko | 2007/01/02 23:32 | 트랙백

행복해지려거든.




"행복해 지려거든 다른 사람들을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 라고 알베르 까뮈는 말했다. 내게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점에 도달하니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두려웠지만 행복했다. 그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렸으니까. 그 선택을 하면서 외로웠고 결과가 두려웠지만, 잘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했다.

- 칼리 피오리나, 힘든선택들 中 에서 -



 독백.

  맞다. 이 짧은 일생 살면서 얼마나 세상사람들을 신경쓰며 사는가. 모든 선택에 나는 없고 남의 눈만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힘든 결정을 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나보다 알지 못했고, 내 비전에 대해 피상적으로 반응했다.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결정하는데 있어서 이번 처럼 간절하게 기도한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진로에 대한 나의 선택은 기도로 준비했고 인간적인 고민들은 내려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10년이 지난 뒤 나 역시도 칼리 피오리나 처럼 잘한 선택인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 할 거다.
 

by Ted_Tatiko | 2007/01/02 21:17 | 세상을 향한 창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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